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6년 8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에서 정의부에 가입했다. 무장투쟁에 필요한 군사교육을 화성의숙(華成義塾)에서 받았다. 1927년 경에는 김경근(金京根) 등의 부하가 되어 십삼도구(十三道溝), 십오도구(十五道溝) 방면에서 군자금 모집, 통신 및 선전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경자돌이 정의부에 가입했던 1920년대 중후반에는 1920년 간도 경신참변과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만주와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이 분산·침체되던 시기로 무장 독립운동 단체들의 재결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유시 참변 직후인 1922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대한독립단 등의 단체를 통합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내부의 분열로 인해 다시금 의군부(義軍府)와 참의부(參義府)로 분립되었다.
이후 대한통의부를 중심으로 통합운동이 재개되었다. 1924년 7월에는 전만통일의회주비회(全滿統一議會籌備會)가 소집되기에 이른다. 대한통의부·군정서(軍政署)·광정단(匡正團)·의우단(義友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노동친목회·변론자치회·고본계(固本契) 등의 각 대표들이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에서 모여 통합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독립운동연합체인 정의부가 탄생되었다.
이경자돌은 정의부의 일원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1928년 5월 경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삼남면(三南面)에서 일본 관헌의 단속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9년 5월 22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총포화약류취체령(銃砲火藥類取締令)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1932년 5월 22일 경성형무소를 출옥할 때까지 3년 5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12. 17)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 16)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5.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