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찍이 만주(滿洲)로 건너가 정의부에 가입했다. 탁일청(卓日淸)과 함께 1927년 7월부터 9월까지 총 네 차례 걸쳐 평안북도 박천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후에도 정의부 소속으로 보초 및 통신원 역할을 담당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군정서(軍政署)·광정단(匡正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조직되었다. 중앙행정위원으로 이탁(李沰)·오동진(吳東振) 등을 선임했다. 류허현(柳河縣)에 본부를 두었다. 1925년 3월부터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여 일제 관공서를 습격하여 피해를 입히는 등의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재만 한인들의 교육을 위해 동명중학(東明中學)·화성의숙(華城義塾) 등을 설립했다. 경제기관으로 농민조합과 농업공사를 설치하기도 했다.
김치룡은 정의부 활동하던 중 1929년 12월 26일 일본 관헌에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5년 6월 20일 출옥할 때까지 약 5년 6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4.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