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0년 음력 7월경부터 약 2개월 동안 함경북도 길주군 일대에서 야단대 의연대장이었던 김원식(金元植)의 부하로 군자금 모금과 대원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길주군 남일동(南一洞)에 독립단지부를 설치하여 김하종(金河鍾)을 지부장으로 하고 기타 10여 명을 단원으로 임명하는 등의 활동을 함께 논의한 바 있다.
의연대원이었던 남학(南鶴)·허경래(許炅淶)와 함께 길주군 웅평면 남양동(南陽洞)의 여관에서 묵던 중 일본 사복 경관의 단속을 받게 되었다. 이에 불응하여 교전하였다. 동료 중 허경래와 김원식 등은 탈주하였으나, 박봉길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야단회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였다. 3.1운동 직후 북만주의 청림교(靑林敎) 교도들이 주축이 되었다. 청년교도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항일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본부는 옌지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에 있었다. 훈련받은 단원이 한 때 수만명에 달했다고 전한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1. 9. 9)
- 판결문(고등법원:1921. 10. 6)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3. 8)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7.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