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7년 2월부터 5월까지 전남 장흥군(長興郡)에서 조선독립의군(朝鮮獨立義軍)에 군자금을 지원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흥 출신의 김석순(金碩順)은 자신의 스승인 송학규(宋學奎)가 정을용(鄭乙龍)과 함께 중국 광동(廣東) 앞바다에 있는 자하도[紫霞島, 남진도(南辰島)라고도 함]에서 조선독립의군을 일으키기 위해 의병(義兵)을 훈련 중인데 군자금이 매우 결핍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를 개탄하여 "조선인 가운데 일본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호소하면서, 1913년부터 1917년 사이에 전남 일대에서 동지들을 모으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장흥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김태규는 김석순의 이러한 취지에 찬성하여, 1914년 2~5월 사이에 그에게 군자금으로 총 28원을 제공하였다. 이 외에도 김석순은 김기현(金基賢)ㆍ김치욱(金致旭)ㆍ김한정(金漢貞) 등으로부터 다수의 현금과 물품을 모집하였다. 김석순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송학규 앞으로 보낸 송금증(送金證) 32매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렇게 모집한 군자금을 30여 회에 걸쳐 중국 자하도에 있던 송학규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1917년 4월 10일 김석순의 활동이 장흥헌병분대(長興憲兵分隊)에 발각되면서 김태규도 함께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23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受刑人名簿
- 不穩朝鮮人發見處分의 件(1917. 5.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2004) 제40권 22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