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2~8월 사이에 황해도 연안군(延安郡)ㆍ해주군(海州郡) 등지에서 공태원의진(孔泰元義陣)의 부장(副將) 총찰관(總察官)으로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교형(絞刑)을 받고 순국하였다.
황해도 지역의 의병은 일제의 의병 토벌이 더욱 강화되던 1909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소규모 단위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해주 등지에서 30~50명 규모로 활동하던 공태원 의병장은 1909년 6월 일제 통감부의 강요로 실시되는 '민적조사(民籍調事)'에 대하여 평산(平山)ㆍ재령(載寧)ㆍ해주군 등지의 면ㆍ리장을 대상으로 저지 운동을 하였다.
공태원의진에 들어가 1909년 음력 윤 2월 15일경과 4월 20일에 수 명의 의병과 함께 황해도 연안군 남부면(南部面) 주동(洲洞)에서 동민들로부터 각각 1만 5천 냥과 16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6월 연안군 금암면(今巖面) 금곡동에서 60엔, 같은 달 15일에는 연안군 미산면(美山面) 7리(里)에서 5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력 8월 20일에는 해주군 청운면(靑雲面) 창동(倉洞)으로 가서 권총 1정 등 총기를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2월 23일 평양공소원(平壤控訴院)에서 이른바 강도죄, 강도살인죄로 교형을 받고 상고했지만, 같은 해 3월 24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統監府原案(1909. 11~1910. 8) 제1권
- 大韓每日申報(1909. 10. 23)
- 大韓帝國官報(1910. 4. 23)
- 大韓每日申報(1910. 4. 24)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86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