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북 경주(慶州)ㆍ영천(永川)ㆍ청송(靑松)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에 투신하여 16명으로 편성된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경북 경주ㆍ영천ㆍ청송 등지에서 일본인과 한인 밀정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6월 일본군 수비대의 추격을 받아 7명이 전사하였으며, 조운이와 이성옥(李成玉)은 1909년 3월 초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조운이는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살인죄로 교수형(絞首刑)을 받았다. 1909년 7월 21일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5일 기각되었다. 1909년 9월 21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暴徒 逮捕의 件(1909. 3. 3) 暴徒에 關한 編冊
- 大韓帝國官報(1909. 9.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