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7월 충북 괴산군(槐山郡)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충북 지역에는 이강년(李康秊) 의병장을 비롯한 방필성(方必成)ㆍ백남규(白南奎)ㆍ왕회종(王會鍾)ㆍ제갈윤신(諸葛允信)ㆍ박준성(朴準成) 등의 의병장이 활약하고 있었다. 특히 청주(淸州)에는 심상희(沈相熙)ㆍ한봉수(韓鳳洙)ㆍ김규환(金奎煥)ㆍ박관실(朴寬實)ㆍ신경락(申京樂)ㆍ정덕로(鄭德老) 등이 의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오명선은 당시 충북 괴산과 청주(淸州) 일대의 의진과 연결되어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7월 16일 괴산군 남하면(南下面)에서 8명의 의병과 함께 일제 수비대와 교전하고 청주 방향으로 이동한 뒤 7월 17일 청주군 동면(東面) 삼거리(三巨里)에서 일본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6일 이른바 내란죄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10월 26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第1審事件簿
- 刑事控訴事件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