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반석현(盤石縣) 흑석진(黑石鎭)에서 정의부(正義府) 반남특별구(盤南特別區) 경비대원(警備隊員)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중국 화전현(樺甸縣)에서 성립된 독립운동단체이며,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조직을 설치하고, 하얼빈 이남의 40여 개 현(縣)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한편, 의용군을 편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의부의 무장투쟁은 의용대(義勇隊)를 중심으로 한 국내 진공작전이 이루어졌으며, 만주 내에서의 무장활동은 모험대(冒險隊) 또는 암살대(暗殺隊)에 의한 전투 활동과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한 모연대(募捐隊)의 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관할지역 한인사회의 자위(自衛)를 위한 보안대(保安隊) 등을 편성하고 있었는데 특히 보안대는 의용군이 아닌 각 지역의 청장년이 중심이 되어 편성된 지역대(地域隊)였다. 이들은 만주 지역 내 친일파와 일제 경찰에 대한 처단에 주력하였으며, 1929년 12월 정의부 주력은 국민부(國民府)로 발전하였다.
1929년 음력 3월 12일 정의부 반남특별구 경비대원으로 동지 한태훈(韓台壎)ㆍ신삼룡(申三龍)과 함께 권총으로 무장하고 휘남현(輝南縣) 유목구(流木溝)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13일에는 휘남현 안자하(安子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4월 23일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 12월 7일 신의주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9. 12.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