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9월 함남 원산부(元山府)에서 미국 의원단(議員團)의 방한(訪韓)을 계기로 최종빈(崔鍾濱)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피살, 순국하였다.
1920년 8월 24일 미국 상하 양원 의원단이 조선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립운동계는 이를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로 파악하였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계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조선의 독립을 국제사회에서 보장받으려는 외교론적 방략에 관심을 가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미국 주도로 열리는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국내에서는 의원단 방한 시 독립에 대한 조선인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태평양회의에 진정서(陳情書)를 보내는 등 항일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또한 김상옥(金相玉) 등은 이를 계기로 조선총독을 비롯한 일제 고관(高官)의 처단, 기관의 파괴 등을 실행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려 하였으며, 해외의 독립운동세력 중에는 국내로 결사대(決死隊)를 파견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국내외적 분위기에 힘입어 당시 원산에서는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김상익(金相翊)ㆍ이용훤(李容暄)ㆍ김장석(金章錫) 등은 미국 의원단의 방문 사실을 알고 원산부 내 조선인 상가(商街)의 폐점, 친일파 처단, 일본 상품의 구입 거절, 관공서 파괴 등의 계획을 세웠다. 또한 이를 위해 상해 임시정부 결사대 명의의 인쇄물을 제작, 배포할 준비를 하였다.
1920년 9월 23일 밤 10시경 600여 명의 학생 등이 모여 한양가(漢陽歌)라는 창가(唱歌)를 부르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시위 도중에 이들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원산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원산지점, 원산우편국(元山郵便局) 등과 시내 두 곳의 경찰관 파출소를 공격하였다. 이에 원산경찰서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조한필 등 2명이 순국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1. 2. 23)
- 東亞日報(1920. 9. 25)
- 每日申報(1920. 9.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