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년 10월부터 평북 초산군(楚山郡) 일대에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중국 관전현(寬甸縣) 대황구(大荒溝)에 소재한 대한독립청년단은 1921년 동단의 검찰(檢察) 문학빈(文鶴彬) 등을 국내로 파견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때 김의묵은 평북 초산군 판면(板面)에 거주하는 임정하(任鼎河)ㆍ김두병(金斗炳)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과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921년 10월 12일 평북 초산군 판면에 소재한 김봉기(金鳳基)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구한 뒤, 11월 24일 30원을 모집하였다. 11월 16일 오후 9시경에는 초산군 판면에 소재한 김규락(金奎落)과 송기언(宋技諺)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구하고, 12월 1일 다시 이들의 집에 가서 각각 50원씩 모집하였다. 11월 16일 오후 11시경에는 역시 판면에 소재한 주문규(朱文奎)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구한 뒤, 같은 달 24일 20원을 모집하였다. 11월 16일 초산군에 거주하는 이병우와 유정화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구한 뒤, 12월 1일 다시 이들의 집에 가서 각각 30원씩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2월 14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ㆍ주거침입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1922년 5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8년 4월 2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地方法院 新義州支廳 : 1922. 2. 14)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 1922. 5. 13)
- 假出獄關係書類
- 每日申報(1922. 2.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