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김동수의진(金東洙義陳)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김동수는 1907년 전남 광주(光州)에서 조경환(曺京煥)ㆍ양상기(梁相基)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1908년 양진여(梁辰如, 梁振汝)의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전남 화순(和順)에서 60여 명의 의병을 규합,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일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두산은 김동수의 지휘 아래 12명의 의병과 함께 1909년 5월 23일 전남 광주군 덕산면(德山面) 덕산리(德山里)에서 면장을 총살하고 이장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일본군의 추격을 받고 체포되었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陣中日誌(土地住宅博物館, 2010) 제3권 66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