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9월 경북 비안군(比安郡, 현 의성군)에서 의병에게 일본군 동향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이 무렵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이강년(李康秊)ㆍ신돌석(申乭石) 의진이, 남부 지역에서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항일투쟁을 주도하였다. 의성군은 남쪽에 영천(永川)ㆍ군위(軍威), 북쪽에 안동(安東)ㆍ문경(聞慶), 동쪽에 청송(靑松), 서쪽에는 상주(尙州)가 위치하였다. 이 가운데 문경은 이강년 의병장의 출신지로, 그는 한때 1천 명의 군세를 자랑할 정도로 대규모 의진을 이끌었다.
일제는 1907년 9월 대구에 주둔 중인 14연대 병력을 동원하여 이강년의진 등을 추적하였다. 당시 이강년의진은 문경의 대승사(大乘寺)와 금룡사(金龍寺) 등 사찰을 근거지로 활동 중이었다. 이때 문경 등 경북 북부 지역 의병진압의 총지휘는 제3종대장(第三縱隊長) 국지주전(菊池主殿) 대좌(大佐)가 맡고 있었다. 여러 의진이 이들에 맞서 격렬히 저항하다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김용출은 일본군의 상황을 탐지하여 의병에 제공하다가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陣中日誌(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1권 2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집 697~69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