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3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하와이 한인학생동맹회,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오하우 와이호리지방회, 하와이대한인교민단, 동지회(同志會), 하와이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 skpl),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3년 9월 하와이 호놀루루 학생동맹회 평의원, 1914년 3월 오하후 와이호리지방회 대의원, 4월에는 경찰원, 1932년 3월 하와이대한인교민단 총단장으로 활동하고, 7월에는 기관지 『국민보(國民報)』 편집사무를 맡아 신문을 발행하였다.
1937년 10월 하와이 국민회(國民會)와 동지회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합동을 결정하였다. 이때 차신호는 동지회 대표로 활약하였다. 1938년 12월 호놀룰루에서 중한민중동맹단을 발기 조직하였고, 같은 해 8월 동지회 측 합동수속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국민회와 합동 방침을 강구하였다. 1939년 2월 중한민중동맹단 단장이 되었으며, 1940년 10월에는 미주한인 각 단체대표대회에 중한민중동맹단 대표로 참석하여 '연합 한인위원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41년 4월 20일 해외한족대회에 중한민중동맹단 대표로 참석하였고, 4월 29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41년 5월 연합위원회 검사위원, 같은 해 11월과 12월 동맹단 총무, 1943년 중한민중동맹단 서기, 독립신문사 하와이지국 사원, 1944년 중한민중동맹단 서기, 감사부 위원, 연합위원회 6부 조직 조사부 위원, 1945년 조미구락부 이사원, 독립신문사 하와이지국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부터 1943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國報(1909. 8. 24)
- 國民報(1913. 9. 27, 1914. 3. 7, 5. 2, 1937. 10. 13, 1938. 8. 31, 9. 14, 1943. 3. 17, 8. 11, 1944. 9. 20, 9. 27, 10. 11)
- 新韓民報(1932. 3. 17, 7. 7, 10. 20, 1937. 11. 25, 1938. 9. 15, 1939. 2. 16, 1941. 5. 8, 5. 15, 5. 22, 5. 29, 6. 5, 1944. 10. 19, 1945. 2. 15, 2. 21)
- 태평양주보(1940. 10. 29, 1941. 4. 29)
- 독립(1943. 12. 8, 1944. 3. 29, 5. 3, 12. 13, 1945. 8. 8)
- 해외한족대회 결의안(1941. 4. 29)(독립기념관 소장)
- 한길수가 미국무부 극동국장 해밀턴(maxwell hamilton)에게 보낸 서한(1941. 11. 23)(독립기념관 소장)
-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1959, 리들리) 217~220, 402~413면
- 韓吉洙와 李承晩(방선주),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연세대학교출판부, 2000) 7~8면
- 하와이 中韓民衆同盟團(1938~1945) 연구(高珽烋, 2005) 16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