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전북 고창(高敞)ㆍ무장(茂長)ㆍ흥덕(興德) 등지에서 박도경의진(朴道京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고창 출신의 박도경은 1907년 9월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ㆍ포사대장(砲射隊長)으로 활동하였다. 전남 장성(長城) 출신의 기삼연은 1896년 창의한 바 있는데, 고종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이후 1907년 9월 전남 영광(靈光) 수연산 석수암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 1908년 음력 1월 2일 기삼연이 순국한 뒤 그 부장들은 각기 의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박도경은 호남창의회맹소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독자적인 의진을 편성하고, 포사장(砲射將)으로서 인근의 의병부대와 필요에 따라 연합의진을 결성하여 군세의 확장과 효과적인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김영수는 1908년 음력 3월 5일 박도경의진에 참여하여 음력 4월 10일 박도경의 부장 윤공숙(尹公淑)이 거느린 5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흥덕군 북면(北面) 후포(後浦) 김익수(金益洙)의 집에서 벼(禾) 50석을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4년 5월 24일 징역 4년 6월 16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4. 22)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79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