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6월 전남 광주(光州)에서 양상기의진(梁相基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양상기는 의병장 양진여(梁振汝)의 아들로 대한제국 진위대(鎭衛隊)의 군인이었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 순사로 근무하면서 부친인 의병장 양진여와 의병장 권택(權澤) 등과 기맥을 통하고 있던 중 파면되었다. 이후 80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광주ㆍ담양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1909년 4월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자술은 광주군 오치면(梧峙面) 삼각리(三角里)의 주막(酒幕) 주인이었다. 1909년 6월 21일 담양군(潭陽郡) 우치면(牛峙面) 신촌(新村)에서 활동하던 양상기의진의 의병 박동근(朴東根)ㆍ김일수(金日洙)ㆍ김만리(金萬里) 등을 돕다가 광주경찰서 소속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內亂)ㆍ모살(謀殺)ㆍ강도(强盜)ㆍ상인죄(傷人罪)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5) 제14권 642~64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