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년 8월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찬(蘇城)에 있는 독립군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같은 해 10월경 독립사상 고취와 독립자금 모집 계획을 세우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던 이민우는 8월경 권문칠(權文七)과 함께 스찬에 있는 독립군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였다. 그 후 10월경 함북 명천군(明川郡) 하고면(下古面) 황암동(黃岩洞)에서 이태련(李泰鍊)ㆍ이현우(李賢禹) 등 9명이 찾아오자, 이들과 함께 국권회복 방략을 논의하고 학교 설립과 동지 양성에 합의하였다. 이들은 명천군 하고면 양생학교(養生學校)에 동지를 입학시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명천군에 이태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같은 달 27일 이태련이 회령환을 타고 귀향하던 도중 청진에서 일본 경찰에 연행되면서 이민우 등도 체포되었다.
1922년 1월 20일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每日申報(1921. 11. 22)
- 東亞日報(1922. 2.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