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적성(積城) 출신으로 해산 군인이었다. 1908년부터 경기도 일원에서윤인순의진(尹仁淳義陣), 연기우의진(延基羽義陣)의 참모장으로 활동하였고, 윤
인순이 전사, 순국한 이후 1909년 10월부터 1911년 1월까지 의병장이 되어 경기
도 파주(坡州), 포천(抱川), 양주(楊州), 적성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전투를
벌이고, 군자금 모집, 친일파, 밀정, 배신자 처단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陳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일
본군 토벌대의 의병집압에 대응한 반일의병투쟁은 한층 고양되었다. 1908년 3
월 허위(許蔿)와 이은찬(李殷瓚) 등은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의 연합
을 모색하여 관동창의원수부(關東倡義元帥府)를 결성하였는데, 원수부우군장 윤
인순은 선봉장 김종운(金鍾雲), 전성서(田聖瑞), 참모장 홍원유, 부장 노재훈(盧
在勳), 김귀손(金貴孫) 등을 거느리고 활동하고 있었다. 1909년 3월 16일 관동창
의원수부 우군장 윤인순이 경기도 적성에서 삭령수비대와 격전을 치르다가 전
사하였다. 이에 홍원유는 이한경과 군사를 나누어 양주, 적성, 파주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9월 소위 남한대토벌작전 이후 의병투쟁의 중심지는 황해도와 경기도,
그리고 경북 북부지역 및 강원도 산간지방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의병투쟁은
전반적으로 퇴조기를 맞고 있었지만, 경기도 지역은 마지막 항전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때 홍원유는 1909년 9월부터 1911년 1월까지 의병장이 되어 경기
도 파주, 포천, 양주, 적성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전투를 벌이고, 군자금
모집, 친일파, 밀정, 배신자 처단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9월 17일 홍원유는 경기도 마전에서 군사를 모집하였고, 동년 9월 28
매국노인 총리대신 이완용의 조카이며 무관학교 학생인 이성구(李性九)을 납치
하여, 그를 의병에 참여하도록 하여 의병부대의 사기를 높이려 하였다. 한편 수
확기를 맞아 군자금의 확보를 위해 각지에 방곡령(防穀令)도 발하였다. 나아가
홍원유는 동년 10월 15~16일 전성서(田聖瑞)와 강기동(姜基東)을 만나 합진을
제의하여 의병부대의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1910년 2월 7일 홍원유는 부하 12명과 함께 적성군 동면 어유리(漁遊里)에서부민(富民) 2명에게 각각 금 50월과 80원을 24일까지 조달하라는 전령을 교부하
였고, 3월 3일 포천군 산내면 금동(琴洞)에서 관헌에게 의병을 밀고한 산내면장
양기하(楊箕夏)를 응징하였고, 3월 6일 양주군 회암면 독암리에서 양주분견소
토벌대와 고전하였다. 또 3월 21일에는 부하 14명과 함께 양주군 석적면 회촌에
서 의병에 참여하였다가 귀순한 뒤 적성 헌병분견소의 끄나풀이 되어 의병의
행동을 밀고한 최봉순을 처단하였다.
홍원유부대는 1910년 4월 14일 전성서부대와 연합하여 의병 36명을 이끌고 포
천군 내정면 신기리에서 적성, 마전 헌병분견소의 연합 토벌대와 충돌하여 22
년식 기총(騎銃)과 23년식 소총 등의 무기를 빼앗기는 피해를 입었다. 홍원유와
전성서 연합부대는 포천군 북면 면장 조운식에게 격문을 발하여 군자금 조달을
명령하고, 5월 2일 조운식을 방문하여 격문에서 요구한 군수전 5천 냥을 요구하
였으나, 조운식이 의병을 속이고 도망하자 그 집을 불태웠다. 5월 8일에는 파주
군 가곡면 북창리에서 토벌군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장 등의 집을 불태우는 등
의병 활동을 하다가 5월 29일 일본군 토벌대의 급습을 받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와 같이 홍원유는 군수전의 확보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한편, 일제 관헌에
게 의병을 밀고하는 자들을 응진하였다. 이에 일제는 1910년 6월부터 양주 일원
에 대한 '대토벌'을 시작하였고, 6월 17일까지 적성경찰서와 헌병분견소는 홍원
유를 체포하기 위해 그 일대를 수색하였으나, 홍원유는 이미 부대를 해산하고
양주군으로 이동하여 잠적하였다. 1910년 6월 일제의 '대토벌'을 고비로 홍원유
의 의병투쟁은 종식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5) 148면
- 1906년부터 1911년까지 日露戰役 후의 한국폭도봉기(독립기념관 소장)
- 統監府文書(국사편찬위원회, 1999) 6권 769면
- 梅泉野錄(黃玹) 卷之六.
- 大韓每日申報(1910. 4. 19, 5. 3, 5. 8, 6. 26, 7. 7)
- 皇城新聞(1910. 5. 8)
- 新韓民報(1910. 5. 8, 5. 18)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8) 資料 17 義兵篇 ⅹ 376~383면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9) 資料 18 義兵篇 3, 7, 157~165, 293~294, 300~3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37~138, 140, 165~168, 176, 407~409, 176~177면
- 抱川郡誌(抱川郡誌編纂委員會, 1997) 上 331, 338, 342~345면
-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이태룡, 2006) 2권(의병편) 287면
- 被告人訊問調書(1908. 12. 2), 수괴 김세향, 홍원유, 전성세에 관한 보고(1909. 9. 23)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3) 資料 12 義兵篇 ⅴ 566~568면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6) 資料 15 義兵篇 ⅷ 596~599, 603, 608~615, 660면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7) 資料 14 義兵篇 ⅸ 2, 178, 181~18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