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전북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11월 전북 고산(高山)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태(笞) 60도(度)를 받았다. 1908년 11월 폭동죄로 다시 태 100도를 받았다. 1909년 3월 전북 부안(扶安) 출신 김낙선(金樂先) 등 30여 명을 이끌고 전북 고부(古阜)ㆍ태인(泰仁)ㆍ부안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4월 전북 부안 봉덕(鳳德) 김오위장(金五衛將)의 집에서 충남 정산(定山) 출신의 승려인 최종현(崔宗賢) 등 12명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8월 이후에는 전북 정읍(井邑) 출신의 김일남(金一男) 등 10여 명과 순창(淳昌)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 무렵 이용서는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陳)의 부장(部將)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09년 12월 신보현이 체포된 후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1910년 중반까지 고부ㆍ부안ㆍ태인ㆍ만경(萬頃)ㆍ김제(金堤)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0. 6)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1. 19)
- 刑事事件簿
- 受刑人名簿
- 暴徒狀況月報(1910. 1. 18, 2. 14, 3. 9, 4. 20, 5. 18, 6. 23, 7. 19) 暴徒에 關한 編冊
- 暴徒首魁調査表(1910. 2. 1)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361, 733~734, 768~76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