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3월 충북 충주군(忠州郡)에서 정낙인의진(鄭樂寅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장 정낙인은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이후 창의한 후 강원도 원주(原州) 일원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 패해 원주로 들어 온 정봉준의진(鄭鳳俊義陳)에 합류하여 연합의병진을 편성하였다. 그는 400~500명의 의병을 휘하에 거느리고 1907년 12월 원주 상업산(祥業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창손은 1908년 음력 3월 25일 정낙인의진에 참여하여 짐꾼으로 운반 작업 등의 활동을 하다 충북 청풍군(淸風郡) 앙동(仰洞)에서 일본군의 총에 좌측 정강이를 맞고 귀환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수종죄(暴動隨從罪)로 태(笞)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8. 9. 2)
- 刑事第1審事件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