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2월 충남 진잠(鎭岑)ㆍ연산(連山), 전북 용안(龍安)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이후 해산군인이 참여하면서 의병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충남 지역에서는 홍원식(洪元植)ㆍ정주원(鄭周元)ㆍ지석홍(池錫弘)ㆍ장석홍(張錫弘)ㆍ염기정(廉基征) 등이 창의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충남 진잠 출신의 염기정은 서울에서 내려온 홍재일(洪在一)의 권유로 1906년 8월 충남 연산에서 4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창의한 뒤, 각처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창규는 1908년 음력 2월 24일 총기를 휴대하고 진잠군 방촌면(芳村面) 갈전동(葛田洞) 이만규(李萬圭)로부터 15원, 같은 달 24일 전북 용안군(龍安郡) 황등리(黃登里) 여관에서 8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24일 용안군에서 하금해(河金海)로부터 군자금 10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8년 7월경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았다. 그 뒤 1913년 징역 12년, 1914년 징역 9년, 그리고 1915년 징역 8년 1월 4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8. 9. 2)
- 刑事第1審事件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