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40~1942년까지 미국 뉴욕 등지에서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재무, 서기 겸 사교부 위원, 선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44년 11월 미군에 지원하여 oss 한인훈련부대(field experimental unit)에 배속되어 냅코(napko)작전에 참여하였으며, 1939~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1926년 6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건너왔으며, 1931년 사우스 다코타의 휴론 칼리지를 졸업하고, 1932년 미네소타대학을 다녔다.
1940년 미국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뉴욕지방회 재무로 선임되어 인구세와 기타 공금 수합, 3월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 식자기계 구입을 위한 의연금 모집, 6월 한국독립광복군 후원을 위한 재정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41년 뉴욕지방회 서기 겸 사교부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나 2월 서기직은 사임하고 사교부 위원으로만 활동하였으며, 1942년 6월 박이근의 후임으로 재무로 보임되어 사교부장과 겸임하였고, 1943년 선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4년 11월 미 육군에 지원한 뒤 즉시 oss의 한인훈련부대에 배속되어 냅코 작전에 참여하였고, 해방이 되자 1945년 9월 13일 병장으로 oss를 전역하였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2001) ⅹⅹⅳ(美洲篇(6)) 126~127, 131면면
- 1940년대 재미한인 독립운동의 노선과 성격(정병준, 2004) 139~140, 143
- 新韓民報(1939. 12. 14, 1940. 3. 14, 4. 18, 4. 25, 7. 11, 12. 19, 12. 26, 1941. 2. 13, 1942. 2. 12, 6. 11, 7. 16, 11. 19, 1943. 1.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