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출신으로 김기준의진(金基俊義陣)에 소속되어 1908년 3월부터 울산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기준은 경남 울산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8년 3월부터 울산 일대에서 휘하에 수십 명을 거느리고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휘하에는 김치옥(金致玉)을 비롯하여 김춘길·염덕로(廉德魯)·허익현(許益見)·박춘영(朴春永)·홍치언(洪致彦)·김치일(金致一)·박선일(朴善一)·송돌기(宋乭基)·박선익(朴善益)·이모(李某) 등이 있었다. 김기준은 1908년 울산군 범서면(凡西面) 내사리 조동면에게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동년 3월 경남 울산군 내현면 월봉동 김소사(金召史)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려 했다. 또한 동년 3월 19일에는 언양 읍내를 공격하여 순사주재소·재무서·우편소·군아(郡衙) 부속 건물 등에 방화하였다.
김춘길은 1908년 8월 31일 체포되어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08년 9월 9일 진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1908년 10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종신(終身)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逮捕에 관한 狀況에 대한 件(1908. 7. 1), 憲兵分隊 및 分遣所 의 歸順者 통보(1908.8.1)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總督府官報(1915. 7.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