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2일 경성에서 박해룡(朴海龍)이 함경남도 이원군으로 가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박해룡은 이원군 천도교구당에서 이와 같은 계획을 김병준(金秉濬) 등에게 알리며 함께 할 것을 권했다. 이때 김중삼도 이와 같은 취지를 전해 듣고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같은 달 10일 기도일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이용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7일과 8일에 걸쳐 회합해 의거에 사용할 ‘조선독립국’이라고 쓴 큰 기 및 민족자결 원칙에 의거해 독립을 선언한다는 취지를 기재한 독립선언서를 약 1,000부 제작했다. 예정대로 10일 교구당에 모인 교도 앞에서 김병준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후 기를 앞세우고 7, 8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이원 읍내를 행진했다. 이들은 읍내를 돌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연설했으며,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김중삼은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Ⅰ 43, 45면
-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 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Ⅱ 90, 9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