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윤태는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24일 강계군의 강계읍 김경하(金京河) 방에서 독립운동을 하고자
기독교인과 지역 유지들이 모여 태극기에다가 태극을 중심으로 원을 지어 특별
한 간격을 두지 않고 친필로 이름을 돌려썼는데, 김윤태를 비롯한 17명이 서명
하였다. 이들은 평양신학교 학생 주하룡(朱夏龍)의 도움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
기를 각 1,000여 매를 등사하였다.
이들은 4월 8일 오전 11시 교회당 종소리에 맞춰 선언서와 국기를 배부하며
2,000여 명의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4명은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김윤태를
비롯한 31명이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김윤태는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
안법 및 출판법, 소요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81~486면
- 平安北道誌(평안북도지편찬위원회, 1973) 8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113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
- 獨立新聞(1920. 1.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