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부터 1938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북간도에 거주하며 간민회(墾民會)에서 활동하였다. 1914년 3월 25일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였다. 1917년 1월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河邊地方會) 보궐선거에서 서기로 선출되었다. 3월에는 문영운과 함께 재정조사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8년 12월 30일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제90단우가 되었다. 1920년 4월에는 대한여자애국단 총부(總部) 고문으로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桑港支部)를 순행하였다. 이후 다뉴바로 이전했다. 6월에는 다뉴바 국어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한글 등을 가르쳤다. 1921년 다뉴바에서 국민대표회의 기성회 회원으로 통고서에 서명하였고, 1922년과 1923년 2년 동안 다뉴바지방회 학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월 로스앤젤레스지방회(羅省地方會) 주최 3.1절 대한독립선언일 경축 준비위원 7인 중 1인으로 선정되었다. 1935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삼일국어학교 임원으로 선임되어 한인 2세의 한글교육을 가르쳤다. 8월에는 미국과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교미(交美)30년기념회’ 서기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6년 5월에는 북가주·중가주·남가주 대표자들과 함께 대한인국민회 부흥책과 합동을 논의하고 7월 대의회를 열어 대한인국민회를 부흥시켰다. 1937년도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지방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월에는 국민회 제1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회 후보위원으로도 선출되었다. 1937년 5월에는 동 지방회 총무로 활동하는 한편, 로스앤젤레스에 국어강습소를 열고 청년들을 가르쳤다. 1938년에도 동 지방회 지방집행위원과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3년 10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독립』의 발기인과 이사부 부원이 되었다. 『독립』은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기관지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와 김원봉(金元鳳)을 후원하였다. 1945년 1월에는 『독립』 신문사 제3차 사우총회에서 감사원으로 선임되었다. 1914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3권 310, 333면, 제8권 340면, 제9권 132, 249면, 제16권 161면, 제17권 337, 382면, 제20권 356면
- 국민보(國民報)(1914. 4. 11, 1937. 2. 3, 1962. 7. 18)
- 독립(獨立)(1943. 10. 6, 10. 27, 1944. 8. 9, 1945. 1. 2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제8집 680면
- 도산안창호전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제10권 643면
- 신한민보(新韓民報)(1914. 5. 7, 1916. 4. 13, 6. 22, 1917. 3. 8, 3. 22, 4. 19, 7. 19, 9. 13, 1918. 6. 20, 12. 12, 1919. 10. 14, 1920. 3. 19, 4. 9, 4. 16, 6. 8, 9. 9, 10. 28, 1921. 6. 16, 10. 20, 12. 1, 1923. 7. 5, 11. 1, 1924. 6. 5, 6. 19, 1925. 5. 21, 1926. 3. 11, 1927. 1. 13, 5. 20, 12. 22, 1928. 11. 15, 1932. 5. 19, 1934. 11. 22, 1935. 1. 3, 8. 15, 9. 5, 1936. 5. 7, 9. 3, 9. 24, 12. 31, 1937. 1. 14, 3. 4, 3. 25, 10. 7, 10. 14, 10. 28, 11. 4, 12. 9, 12. 16, 1938. 2. 3, 11.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