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출신으로 1907년 홍범도·차도선의병부대(洪範圖·車道善義兵部隊)의 제1분대 참독(參督)으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7년 11월 25일 함남 북청군 후치령(厚峙岺)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하였다.차도선은 함경남도 갑산(甲山) 출신으로 진위대(鎭衛隊) 하사로 복무하였다.
차도선은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후 1907년 8월 함경남도 풍산(豊山)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의병장이 되어 중대장 태양욱(太陽郁) 등과 함께 친일파 및 일진회원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차도선의병부대는 북청·삼수·갑산 등지의 포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차도선은 홍범도와 함께 1907년 11월 15일 북청군 안평사 엄방동에서 70여 명의 의병으로 창의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차도선과 홍범도는 의병 70여 명을 7개분대로 편성하고 친일주구인 일진회원을 소탕할 것을 선포하였다. 다음날인 16일 차도선 등은 북청군 안평면장이며 일진회 회원인 주도익(朱道翼)을 처단하고, 19일에는 일진회 회원인 안산면장 이쾌년(李快年), 20일에는 안산사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최석우(崔錫禹)·이종현(李鐘鉉)·김창식(金昌植)·김창로(金昌魯)·이병필(李炳弼) 등 5인을 처단하였다. 그 후 차도선과 홍범도는 11월 25일 북청 후치령전투(厚峙嶺戰鬪), 12월 29일 삼수성전투(三水城戰鬪), 1908년 1월 10일 갑산읍전투(甲山邑戰鬪), 1월 23일 단천 운승리전투(雲承里戰鬪), 2월 22일 갑산 세곡전투(細谷戰鬪) 등을 통해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함경도 일원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김춘진은 차도선과 홍범도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 11월 15일 경 조직되는 차도선과 홍범도의 의병부대 70여 명은 모두 7개분대로 편성되었는데, 도독(都督)은 임창근(林昌根)으로 추정되며, 차도선과 홍범도는 제1분대의 부독(副督)을 맡았다. 김춘진은 제1분대의 참독으로 동년 11월 22일부터 25일까지 북청 후치령전투에 참여하였다. 후치령전투는 3일간 4차례에 걸쳐 치러진 유격전으로 홍범도·차도선 의병부대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김춘진을 비롯한 6명의
일등포수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8) 資料 14 義兵篇 ⅶ
- 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5) 洪範圖篇 4~5면
- 甲山과 北靑 南郡 地方의 義兵에 關한 報告(1907. 12. 9), 投書에 관한 건(1909. 6. 15)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