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함북 경흥 출신으로 1909년 중국 합십마구(哈什螞溝)에서 부하 40여명을 이끌 고 항일활동을 하였으며, 1918년 국민회 연추지방지부 임원을 역임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해산군인 다수가 러시아의 연추(煙秋) 일대로 망명하였다. 이때 간도에서 의병 사포대(射砲隊)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바 있던 의병장 이범윤(李範允)이 연추지방의 최재형(崔在亨)으로부터 군량과 군자금을 제공 받아 의병진을 정비하는 한편, 1908년 3월 헤이그특사였 던 이위종(李瑋鍾)이 가지고 온 1만 루블의 군자금으로 이범윤을 총재로 하는 창의회를 조직하였다.
나아가 1908년 4월 최재형, 엄인섭(嚴仁燮) 등은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였고, 이범윤은 유인석·차석보(車錫甫)와 함께 성명회(聲鳴 會)를 조직하여 의연금 모금과 일제강점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범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인석(柳麟錫)과 회합하고, 항일운동에 서로 협조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리하여 1908년 7월 최재형이 정예 200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 너, 함경북도 경원의 신아산(新阿山)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였다. 또 회령 의 영산(永山)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러시아의 압력 때문에 1909년 3월 이후 최재형은 표면적으로 의병 활동을 중지하고 홍범 도를 지휘관으로 하는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국내진공을 추진하였다.
장기준은 연추 북방 약 2리 반 정도 떨어진 주하중소(珠河中所)에서 여인숙 (旅人宿)을 경영하던 최재형 계열의 인물이었다. 장기준은 1908년 4월 조직된 동의회에서 엄인섭 등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장 기준은 연추와 가까운 청국령 합십마구에서 의병 약 40명을 거느리고 활동하였 다.
이들은 연추, 오가자(五家子)와 훈춘(琿春) 지방을 왕래하며 의병 활동을 전 개하였다. 그 외 장기준은 1918년 국민회(國民會) 연추지방지부(煙秋地方支部) 임원(任員)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6) 資料15 義兵篇ⅷ 162면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8) 資料17 義兵篇ⅹ 573면
- 煙秋지방 상황보고의 건(1918. 8.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6)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78) 資料7 安重根篇ⅱ 245, 333면
- 統監府文書(國史編纂委員會, 1999) 제6권 51, 34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