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장단(長端)에 거주하였는데, 1909년 김수민의진(金秀敏義陣)에 소속되어장단군 강서면(江西面)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수민은 1907년 9월 부하 300명으로 창의하여 대장이 되었고, 곧이어 관군의 대포 30문과 소포 150문을 탈취하여 병력을 강화시켰다. 김수민의진은 10월 11일 장단에서 일본군과 한 차례 교전을 하였으며, 11월 27일 개성수비대와 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12월 부하 100명을 이끌고 이인영의진(李麟榮義陣)과 합병한 뒤 경기도와 황해도 일원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였다.
1908년 김수민의진은 경기도 장단·풍덕 일대에서 맹위를 떨치다가 10월부터 강화도에 상륙하여 활동하였다.
1909년 김수민의진은 적성(赤城)을 비롯하여 강원도·충청도·황해도 일원에서 연기우(延基羽)·이진룡(李鎭龍)·한정만(韓貞萬) 등의 의병부대와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1909년 8월 김수민은 적정(賊情)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로 잠입하였다가 체포되어 1909년 11월 22일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하였다.
김광옥은 김수민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음력 10월 5일 김기서(金基西)를 비롯한 의병 45명과 함께 무기를 유대하고 장단군 강서면 자하동 전경칠(全景七)에게 군량으로 벼 3섬을 제출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후 10월 30일 체포되어 압송되는 도중에 강서면 마성리에서 탈출하려다가 일본군에게 총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京城新報(1909. 12.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5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