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ㆍ1운동 이후 평북 일대에서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평북 중화군(中和郡) 용흥면(龍興面) 용흥리(龍興里)의 기독교 목사 강시봉(姜時鳳)을 중심으로, 중국 상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평북 희천군(熙川郡) 일대에서 설치된 연통제 조직에 참여하였다. 연통제는 1919년 3ㆍ1운동 이후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에 해당된다. 국내의 전 지역에 설치되지는 못하였으나,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단체들 가운데서도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지원 활동을 하면서 연통제 역할을 수행한 단체가 적지 않았다. 당시 평북 연통제 조직에는 강시봉ㆍ김운현을 비롯하여 김봉근(金鳳瑾)ㆍ황용기(黃龍起)ㆍ박승대(朴承大)ㆍ조영걸(曹榮杰)ㆍ정인규(鄭寅奎)ㆍ최유현(崔有鉉)ㆍ임종형(林鍾衡) 등이 참여하였다.
김운현은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신문(獨立新聞)』, 「경고문(警告文)」 등을 배포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시기 평북 일대에서 연통제와 관련하여 체포된 사례가 많았는데, 당시 이 사건을 '평북연통제 사건' 또는 '희천연통제 사건' 등으로 불렀다.
1921년 3월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8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1. 3. 31, 1933. 3. 22)
- 中外日報(1927. 7. 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 : 1921. 5.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