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묵경지방회 국치기념식에서 '망국역사담'을 주제로 연설하고, 1933년 9월 '국치가'를 지어 『신한민보』에 게재하는 등 한인들에게 독립정신을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찍이 구 한국군에 복무하였다. 1905년 4월 영국인이자 멕시코 국적의 국제이민 브로커 마이어스와 일본의 대륙식산합자회사 직원 오바 간이치의 계략에 속아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4년간 노동 이민을 떠났다. 같은 해 5월 11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도착하여 에네켄농장에서 일하였다. 4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1909년 5월 미주 국민회 특파원 황사용(黃思溶)과 방화중(邦化重)의 지원으로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산하에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설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0년 4월 대한인국민회 동 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12년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市地方會) 서기로 활동하였고, 1913년 6월과 11월에는 서기 겸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4년 2월 와하케뇨의 일신학교(日新學校) 교사로 초빙되어 와하케뇨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로 이전하였고, 같은 해 4월 동 지방회 서기로 선정되었다. 그 후 다시 메리다지방회로 돌아와 1915년 5월까지 서기·구제원·외교원 등 3가지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0년에는 대의원과 서기, 1921년 부회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탐피코로 이주하여 1923년 6월 탐피코지방회 서기로 활동하였다. 이후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31년 8월 동 지방회 국치기념식에서 「망국역사담」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자성단이 멕시코시티에서 혁명운동 준비금을 모집하기 위해 주례금을 모집하자, 주례금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1933년 멕시코시티지방회 서기로 활동하면서 같은 해 9월에는 「국치가」를 지어 『신한민보(新韓民報)』에 게재하는 등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34년과 1935년에도 동 지방회 서기, 그리고 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1935년 3월 사임하였다. 같은 해 6월 동 지방회와 자성단이 통합하여 새로운 지방회 임원을 구성하자, 구제원으로 선출되었다. 1936년 8월 동 지방회 대의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4년부터 1933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09. 11. 24, 1910. 5. 11, 1913. 6. 23, 11. 7, 1914. 2. 5, 2. 19, 4. 2, 1915. 5. 20, 1918. 8. 1, 11. 21, 1919. 11. 25, 1920. 5. 8, 7. 20, 12. 2, 1923. 5. 24, 6. 21, 1928. 12. 6, 12. 27, 1930. 3. 20, 4. 17, 1931. 9. 17, 12. 3, 1932. 3. 3, 6. 2, 12. 22, 1933. 9. 21, 12. 21, 1934. 12. 20, 1935. 4. 11, 6. 20, 1936. 8. 20, 1937. 1. 14, 1. 22, 1938. 4. 7, 9. 22)
- 독립신문(獨立新聞)(1920. 5. 8)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414면, 제5권 180면, 제9권 51, 210면, 제10권 128면, 제17권 289면
-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이자경, 1998) 314, 31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