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1920년대 초반 만주에서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 결성을 주도하였다.
1921년 1월부터 만주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장백현(長白縣) 16도구(道溝)를 중심으로 군비단(軍備團), 태극단, 광복단, 대진단지부(大震團支部), 흥업단지부(興業團支部)의 대표 50여명이 대진단지부사무소에서 회합하여, 압록강연안 각 단체의 연락통일과 본격적인 무장투쟁 전개를 목적으로 하는 연합규약을 제정하고 연합회의 임원단을 선임하였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10월 흥업단 단장 김호(金虎)를 회장으로 하는 대한국민단이 결성되었다. 임원 회장 김호, 부회장 이은향(李殷鄕), 총무 윤병용(尹秉庸), 비서 김용대(金容大),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재무부장 강연상(姜鍊翔), 서무부장 석주(石柱), 군사부장 김찬(金燦), 경호부장 한창언(韓昌彦) 등이었다.
조직은 경호부에 경비원 수십 명을 배치하여 경비 및 경호를 시키고, 군사부 밑에 군대를 설치하고 군대편성을 계획하였다. 이어서 안도(安圖), 임강(臨江), 장백현에 동지단,서지단,남지단을 설치하였다. 혼성의용군을 편성하여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하였고 농민회를 조직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의 제공,운반 및 모군(募軍) 활동의 확대를 꾀하였다. 이로써 동단(同團)은 일정한 지역 내에서 가능한 한 통일노선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김창일은 1920년경부터 장백현 흥업단 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1922년 광복단 및 군비단 등과 협의하여 신한청년회(新韓靑年會) 및 대한국민단 결성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長白縣下 不逞鮮人의 行動에 관한 건(關東軍 參謀部:1920. 8.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0) 100면, 國外情報, 支那長白縣內 不逞鮮人團(日本陸軍省:1921. 6. 1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8)
- 國境警備에 관한 所見(1921. 10.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不逞鮮人의 新韓靑年會 組織(關東廳 警務局:1922. 2. 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1)
- 間島接壤地 地方 不逞鮮人의 行動에 관한 건(間島 總領事:1923. 9.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東亞日報(1921. 11. 15)
- 長白縣知事와 不逞鮮人과의 관계(安東警務署長:1921. 9. 3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9)
- 最近間島 및 長白地方 不逞鮮人 情勢(朝鮮總督府 警務局:1921. 10.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長白縣下 不逞團의 系統的 調査(關東廳 警務局:1922. 1.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1)
- 不逞鮮人 狀況 槪要(朝鮮軍 參謀部:1922. 11. 20) 不逞鮮人狀況報告(日本陸軍省)
- 大正12年 9月中 間島 및 接壤地 地方 治安狀況에 관한 건(間島 總領事:1923. 10.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32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