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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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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元日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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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11 훈격 애국장
1907년 강원(江原) 정선군(旌善郡)에서 이도총(李都摠)(성명 미상)이 인솔하는 의진(義陣)부장(部將)으로 동년 12월 정선군(旌善郡) 남면(南面) 증산리(甑山里) 도사동(道士洞)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 도중 피살(被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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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원일은 1907년 강원도 정선(旌善)에서 활동한 이도총의진(李都摠義陣)의 부장(部將)으로 1907년 12월 정선군 남면(南面) 증산리(甑山里) 도사동(道士洞)에서 일본군 토벌대(討伐隊)와 전투 중 체포되어 피살,순국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뒤,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강원도 지방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 침략 세력과 그에 편승한 친일 주구배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응징이 전개되었다.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특무정교(特務正校) 민긍호(閔肯鎬)가 원주에서 창의하면서 강원도 각처에서 창의의 기치가 올랐다. 한편 충북 제천에서는 이강년이 제천을 점령하여 무혈 입성하였으므로 민긍호는 이강년과 합세하여 연합의병진을 결성하였다. 또 이에 호응하여 각처의 의병진이 합세해 왔으니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연합의병진 관동창의대(關東倡義隊)를 조직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각처에서 결성된 의병부대의 활동이 왕성하게 나타났다.

김원일은 1907년 12월 이도총의진의 부장으로 정선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9일 정선군 남면 증산리 도사동에서 이도총이 거느린 의병 약 300명이 일본군과 격돌하는 큰 전투가 벌어져 131명의 의병이 전사하였다. 당시 이도총의진의 부장인 김원일(金元日)도 체포되었으나 탈출을 기도하다가 총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집 719면
  • 陣中日誌(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1권 607~60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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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원일 - 미상 -
본문
출신지역과 출생년도, 집안 배경이나 성장과정 등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다. 1907년 이도총(李都摠)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부장(部將)에 임명되었고,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강원도 일대의 의병전쟁은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와 원주 주민의 연합 봉기에 의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이후 도내 각지로 확산되었다.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는 춘천, 원주, 강릉을 이동하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민긍호는 1901년 특무정교가 되어 원주진위대에 전입한 이후,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원주진위대가 해산당하자 해산군인 300여명을 이끌고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을 공격하였다. 이후 의병부대를 소단위의 의병부대로 재편성하여 강원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이때 이도총 의병부대의 부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도총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나 이도총이 실명이 아니라 이씨 성을 가진 도총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군의 기록인 『진중일지(陣中日誌)』에 따르면 서울 출신으로 나이는 50세라 하였다. 이도총 의병부대 약 300명은 1907년 12월 9일 오전 6시부터 강원도 정선군 남면(南面) 증산리(甑山里) 도사동(道士洞)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의병대는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항전하였으나 131명이 전사하고 소총 96정을 비롯하여 피복 100여점 등 다량의 물품도 빼앗겼다. 의병장은 도피했으나 이춘화(李春化), 김명춘(金明春), 이성화(李成化), 장춘삼(張春三) 등과 함께 일본군에 붙잡혔다가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 결국 총살당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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