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춘백은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곽산면(郭山面) 석동(石洞) 출신으로 남만(南滿)의 유하현(柳河縣)으로 이주하여 동명중학(東明中學)을 졸업한 후 길림성(吉林省) 영길현(永吉縣) 제2구 신안둔(新安屯)에 이주하여 살았다. 이후 ml계 주중청년총동맹(住中靑年總同盟)에 가입해 청소년,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중청년총동맹은 1928년 5월 26일 길림성 반석현(磐石縣) 호란집창자(呼蘭集廠子)에서 조직되었으며, 중국 관내지역(管內地域)과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던 좌파 한인청년세력의 협동전선운동(協同戰線運動) 성격을 표방하였다. 참가단체는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남만청년총동맹(南滿靑年總同盟),합장(哈長)청년동맹,여신(麗新)청년회,북만청년총동맹,송강(松江)청년총동맹,신성(新星)청년회였다. 이들은 ml파 조선공산당만주총국(朝鮮共産黨滿洲總局)의 외곽단체 역할을 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 과정에서는 이른바 '촉성회파(促成會派)'의 주도세력으로 활동하였다.
김춘백은 1930년 7월경 길림성 향하진(向河鎭)에서 일본인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가 영길현(永吉縣) 중국 공안대(公安隊)에 체포되어 일본 장춘영사관(長春領事館)으로 이송된 후 1932년 5월 28일 유치장에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2. 6.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