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이판득은 1908년 경북 경주(慶州)에서 의병장(義兵將)으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경북 경주 지역은 산남의진(山南義陣)의 활동 영역이었다.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은 1908년 1월부터 일본군에게 체포되는 동년 7월까지 일본군의 끈질긴 진압 작전에도 불구하고 영천을 비롯하여 청송,영덕,영양,영해,청도,의성 등지에서 각 지대별 유격전을 구사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특히 경주,울산,흥해,포항지역은 본부에서 최세윤 자신이 직접 담당하고 비학산,운문산,토함산,운주산 등을 연결하여 활동하였다.
이판득은 경주군 외동면(外東面) 괘릉동(掛陵洞)에 거주하면서 소규모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활동하고 있었다. 1908년 5월 16일 경주군 외동에서 경주군 우편국(郵便局) 체송인(遞送人) 정원오(鄭源五)를 살해하고 우편물 중 금품을 탈취하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년 5월 28일 이판득은 경주수비대(慶州守備隊)의 추격을 받아 외동면 괘릉에서 체포되어 5월 31일 경주로 호송 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陣中日誌(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ⅱ권 343, 349면
- 暴徒에 關한 編冊(大邱警察署長:1908. 6.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