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이동구의 출신은 알 수 없으나 1908년 5월 경북 흥해(興海)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경북 흥해 지역은 산남의진의 활동 지역이었다. 산남의진 결성 초부터 흥해에 머물며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던 최세윤(崔世允)은 1908년 2월 5일 이세기(李世紀),정순기(鄭純基) 등의 추대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제3대 대장이 되었다. 최세윤은 1908년 1월부터 일본군에게 체포된 동년 7월까지 일본군의 끈질긴 진압 작전에도 불구하고 영천을 비롯하여 청송,영덕,영양,영해,경주,청도,의성 등지에서 각 지대별 유격전을 구사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동구는 1908년 5월 28일 흥해군 신광명(神光面) 장동(長洞)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부자(父子)가 함께 일본군 경주수비대(慶州守備隊) 토벌대(討伐隊)에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陣中日誌(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ⅱ권 3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