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조병순은 1907년 9월 경북 문경(聞慶)에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일본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군량을 제공하였으며,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이강년은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창의하여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 참가하여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3월 재봉기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8년 8월 한국 군대의 해산 이후 제천으로 들어가 민긍호부대(閔肯鎬部隊)와 합류하여 의병진을 재편성하였고, 8월 19일 주천으로 이동하여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이 되었다. 8월 23일 충주성 공략에 실패한 이강년은 단양,풍기 등을 거쳐 문경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동년 5월 강원도를 거쳐 경북 봉화 지역으로 진출한 이강년은 5월 18일부터 전개된 서벽전투(西碧戰鬪),내성전투(乃城戰鬪),재산전투(才山戰鬪) 등을 치루며 대일항전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08년 7월 2일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체포된 이강년은 평리원(平理院)에서 교수형(絞首刑)을 선고받고, 10월 12일 순국하였다.
조병순은 전 군수(前 郡守)로 문경에 거주하면서 배일파(排日派)로 이름이 났다. 평소 이강년의진과 연락하며 사람을 보내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1907년 9월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며 대승사(大乘寺)에 주둔하고 있던 이강년의진에 양식을 보내고 양민을 의병으로 모집하였다. 조병순은 이강년과 서면(書面)을 교환하며 일본군의 행동을 통지하고 양식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던 이강유(李康裕)와 함께 1907년 9월 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군 수비대의 심문을 받던 중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陣中日誌(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1권 229~23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