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효건은 1919년 음력 12월경 평남(平南) 의주군(義州郡)에서 장유건(張維健)의 권유로 대한광제청년단(大韓廣濟靑年團)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음력 3월경 동 단체의 총회에서 지방총무에 선출되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에 의해 조직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체포되자 압록강을 건너 중국(中國) 관전현(寬甸縣)으로 탈출하였다.
1921년 음력 1월 말경 삭주군(朔州郡)으로 잠입하여 임시정부로부터 받은 면감(面監) 임명장 및 독립신문 등을 최효진(崔孝鎭)에게 교부하고, 김성서(金成瑞), 김성봉(金成鳳) 등에게 인구세, 구국금 영수증을 교부하는 등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독립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2월 말경에는 관전현 부근에 거주하는 삭주군 출신들을 모아 의연금을 거두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동년 3월경 평북 독판대리 김승만(金承萬)의 추천으로 삭주군감이 되었다. 이후 삭주군에 잠입하여 인구세 및 구국금 수백원을 모집하였고, 동년 12월경 독립공채권 5매를 받아 동군 서남면(西南面) 김학원(金鶴元)에게 1매를 교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3월 초부터 1924년 1월 말까지 관전현에 설립된 각종 사숙(私塾)의 교사로 동포 자제의 교육에 이바지하였으나, 1924년 2월경 일본의 회유공작에 걸려 귀국 후 체포되었다. 1924년 5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1924년 8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 1924. 8. 12)
- 獨立團 會議 狀況(拓植局長)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 大定 11년 중에 있어서 관내 불령선인의 상황(安東領事 : 1922. 2.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