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남만주 집안현(輯安縣)에서 참의부(參議府)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다가 희생되었다.
참의부는 1923년 남만지역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통합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간부들 사이의 이념분쟁으로 인해 분열되는 상황에서 결성되었다. 당시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의 직할 부대를 편성해 만주지역 독립군을 재통합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통의부의 일부 무장대원인 백광운(白狂雲), 조능식(趙能植) 등은 임시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임시정부 직속의 남만군정부(南滿軍政府)로 인정받는 한편, 정식 명칭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1923년 9월 정식으로 결성된 참의부는 집안, 무송(撫松), 장백(長白), 안도(安圖), 통화(通化), 유화(柳化)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참의부의 부대 편성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에 백광운, 제2중대장에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에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에 허운기(許雲起), 중앙의회의장에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民事部長)에 김소하(金筱廈) 등으로 이루어졌다.
부서는 민사(民事) 조직보다 군사 조직이 중시되었으나, 민사부의 관할 구역은 13개 지방행정구로 나누어져 군자금 모금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대 초반 만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군단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1925년 6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장(警務局長)과 장작림(張作霖) 만주 군벌 사이에 이른바 삼사협정(三矢協定)이 체결되자 중국 관헌들은 한인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일제 당국에 넘겨 보상금을 받거나 한인 양민들에 대해 부당하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한인독립운동가들이 탄압을 받았다.
강명희는 집안현에서 참의부 참사(參事)로 활동하던 중 1927년 12월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보갑대(保甲隊) 대원에게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7. 12. 3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28면
- 독립운동사료 중국편(국가보훈처) 제11권 142면
- 독립운동사료 중국편(국가보훈처) 제19집 216~220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47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