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940년 미주 (美洲)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 북미총회 (北美總會) 등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의연금을 전달하고, 1914년 3월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상항지방회에 가입했으며, 1922년 다뉴바지방회 실업부원 (實業部員) 에 선임되고, 1930년 3월 국내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중가주 대한인공동회 (中加洲大韓人共同會) 회장 (會長) 에 선임되고, 1932년 11월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구미위원부 (歐美委員部) 후원 활동을 전개했으며, 1933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한인연합회 (美洲韓人聯合會) 제2차 통상회에 나성동지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고, 1937년 1월 재건 (再建)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제1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38년 12월 중가주지방회 지방대표로 선임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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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형순은 1914년 3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가입했으며, 1922년 다뉴바지방회 실업부원(實業部員)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 국내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중가주대한인공동회(中加洲大韓人共同會) 회장에 선임되었으며, 1932년 11월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후원 활동을 전개하였고, 1933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한인연합회(美洲韓人聯合會) 제2차 통상회에 나성동지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1937년 1월 재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제1차 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된 데 이어, 1938년 12월 중가주지방회 지방대표로 선임되었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중가주지방회 대표원,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김형순은 1914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총 5,337원의 독립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2권 40면
- 삼천리 제8권 제1호(1936. 1. 1.) 104~105면
- 新韓民報(1914. 3. 12, 1922. 1. 26, 1930. 3. 27, 1931. 7. 16, 11. 12, 12. 17, 1932. 5. 26, 11.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