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8일 밤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東來面)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3월 19일 아침 동래 시장통에 유인물을 배포하는 3.1운동에 참여했다.
3월 17일 북면(北面) 범어사(梵魚寺) 법당에서 승려 차상명(車相明)이 신문을 읽고 김봉환(金奉煥)에게 독립운동을 발의했다. 또한 안경환(安敬煥)・김영규(金永奎)에게도 “각지에서 독립을 희망하여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에 호응하자”며 만세운동 실행을 권유했다. 이후 이들은 부속학교 대표격인 명정학교(明正學校) 김한기(金漢琦)와 지방학림(地方學林) 김상기(金相琦)에게도 참가를 권유했다. 그날 밤 범어사에서 두 학교의 졸업생의 송별식이 거행되어 승려들과 학생 3~40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차상명이 연설을 하며 참석자들에게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했다. 참석자 일동은 이에 찬성하고 산을 이용해 복천동(福泉洞) 불교 포교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밀고자가 있어 동래경찰서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체포되고 해산을 당했다. 체포되지 않은 승려와 학생 40여 명은 그날 밤 동래 서문 부근에서 ‘한국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에 이르는 만세 행진을 전개했다. 다음날인 3월 19일 오전 8시경 허영호(許永鎬)가 격문 수백 매를 황학동・허영호・윤상은(尹相殷)・이영우(李永雨) 등이 동래 시장통에 배포했다. 이어 오후 5시경 이근우(李根雨) 등 수십 명의 학생들이 동래 시장 남문에서 ‘한국독립만세’를 외치고 동래경찰서 문 앞까지 행진하였다. 또한 오후 6시경에도 승려 김재호(金在浩), 학생 김해관(金海管) 등 수십 명이 동래 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황학동은 만세운동 참가로 동래경찰서 경찰에 체포되어 구류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9월 12일 부산감옥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2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87~1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