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7~8월경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대하여 검찰(檢察) 및 재무부장(財務部長) 등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평북 초산군(楚山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남면사무소(南面事務所)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1919년 4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주요 간부는 조맹선(趙孟善)ㆍ백삼규(白三奎)ㆍ조병준(趙秉準) 등이었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산하 광복군사령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국내외 모두 100여 개소에 지단과 지부를 두었는데, 평북 지역에는 용천군(龍川郡)ㆍ철산군(鐵山郡)ㆍ영변군(寧邊郡)ㆍ정주군(定州郡)ㆍ태천군(泰川郡)ㆍ가산군(嘉山郡) 등에 지단이 설치되었다.
김종섭은 1920년 7월에서 8월경 당시 환인현(桓仁縣)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다. 대한독립단 검찰로서 김여정(金汝正)ㆍ석환옥(石煥玉)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24일 밤 초산군 남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2월 15일 평양복십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위반, 방화죄, 가택침입죄, 강도미수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24년에 징역 11년 3월로 감형되어 경성감옥(京城監獄)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2년 6월 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情報(1921. 3. 1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1. 9. 25, 10. 1)
- 獨立新聞(1921. 10.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