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채한석은 두만강 연안의 황파진(黃坡鎭) 헌병출장소 헌병보조원으로 재직하면서 독립군의 길안내를 담당하여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였다.
1920년 봄부터, 홍범도(洪範圖),최진동(崔振東),양하청(梁河情)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은 서로 유기적인 연락을 취해가며, 두만강 연안의 국경 지대인 회령(會寧),종성(鍾城),온성(穩城) 지방으로 연속적인 진입 작전을 폈다. 그 중에도 그 해 2월에는 길림성 지역의 우리 독립군 각 부대 약 2천 명이 회령 부근으로 진격, 밤을 타서 적의 군영을 공격하여 일대 섬멸전을 벌였는데 이 싸움에서 적군의 전사자가 3백에 달하고 남은 군사 4백은 흩어져 달아났으며, 아군은 적 진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월에는 독립군 80여 명 1대가 다시, 회령 북쪽 종성 지방으로 진입하여 일본군 헌병대를 습격, 승리하고 소총 등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다시 공격의 방향을 온성 지방으로 돌려 전진하니 함경북도 국경 부근 일대는 전시 상태를 이루었으며 적측에서는 군대,헌병,경찰대를 동원하여 방비에 당황하였다. 그러나 38식 권총 및 러시아 총검 등으로 무기를 갖춘 약 5백 명의 독립군 부대는 최진동,양하청 등의 작전 지휘에 의하여 다시 여기저기서 적의 방어선을 뚫고 계속 전진하였다. 거기에는 일제 헌병보조원으로 있다가 독립군으로 돌아온 채한석, 최봉길(崔鳳吉) 등의 성의를 다한 길 인도가 작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채한석은 양하청이 지휘하는 독립군에 소속되어 주재소를 공격하고 일제 경찰과 교전(交戰)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5년 2월 한응진(韓應律)의 밀고로 일본 관헌에게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時代日報(1925. 5. 3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355~356면
- 穩城 地方 侵襲에 관한 詳報 (高警 제12537호, 1920. 4.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7)
- 獨立新聞(1920. 5.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