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정인은 경남 마산(馬山)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당시 이곳 마산은 기독계통을 통하여 서울과 긴밀하게 연락이 취해지고 있었다. 1919년 2월 23일 청년 이갑성(李甲成)이, 경남에서 33인 중 한 사람을 추대하기 위해 마산에 내려 왔다. 2월 28일 이갑성은 김창준(金昌俊)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약 6백매를 받은 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3월 1일 이른 아침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李容祥)에게 4백매를 주어 대구와 마산에 전하도록 했다. 이용상은 대구를 거쳐 3月 2日 마산에 도착하여 당시 마산부 표정(表町)에 살던 임학찬 집을 찾아가 2백매를 전하고, 이것을 전해받은 김용환(金容煥)은 3월 3일에 이 독립선언서를 마산 무학산에서 군중에게 배부하려다가 일경에 발각되었다.
3월 10일에는 함안군(咸安郡) 칠원(漆原)의 기독교도들이 장날에 봉기하려다가 사전에 칠원주재소 경찰에게 탐지되어 엄중한 단속을 받았다.
3월 11일 부산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여학생들이 먼저 독립 만세시위의 횃불을 올렸다. 드디어 3월 21일 장날에 3,000여명 군중의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3월 26일 장날과 31일에도 제3차 의거가 일어났다.
마산의 시위로 체포된 김정인은 5월 1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9월 1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19. 5. 22)·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235~24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