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대 초 북간도에 성립된 국민회군(國民會軍)의 간부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했다.
국민회군은 1919년 용정 3·13만세시위 후 연길현(延吉縣)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산하 독립군단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의 독립운동기관임을 밝히며 출발한 대한국민회는 성립 초기 본부를 연길현 춘양향(春陽鄕) 합마당(蛤蟆塘)에 두고 동·서·남·북·중의 5개 지방회와 70여개에 달하는 지회(支會)를 두었다. 1920년에 대한국민회는 의란구(依蘭溝)에도 총부(總部)를 두었고, 그 아래 민정기관으로 8개의 지방회와 130여개의 지회를 설치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국민회군은 이 같은 방대한 조직을 갖춘 대한국민회의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1920년 8월 현재 약 450명의 병력과 소총 400정, 화총(火銃) 160정, 탄약 7,000여 발, 수류탄 120여 개를 보유했다. 이 군단은 1920년 10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과 함께 청산리대첩에 참가해 독립군의 대승첩을 이끄는 일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청산리대첩 후에는 북만주로 근거지를 옮겨 항일활동을 이어갔다.
김철은 국민회군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1925년 10월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일제의 밀정 김군삼을 총살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조국 독립의 의지를 꺽지 않았던 김철은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 1925년 11월 3일 옥중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선봉(1926. 2.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