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북간도 왕청현(汪淸縣)에 근거지를 가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군사기관이었던 대한군정서는 서간도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함께 초기 독립군의 무장활동을 주도한 독립군단이었다. 대한군정서는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한 대종교 계통의 인사들이 힘을 합해 조직한 중광단(重光團)이 발전해 만들어졌다. 중광단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무장항일전을 전개할 목적으로 군세를 확장한 뒤 정의단(正義團)으로 단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군정회(軍政會)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0월에는 군정부로(軍政府)로 명칭을 변경해 독립군사정부임을 천명하였다. 이어 1919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령에 의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가 되었고, 서간도의 서로군정서와 함께 임시정부의 양대 군사기관임을 나타내기 위해 북로군정서로 불렀다.
남규천은 대한군정서의 제18구 경신국(警信局) 제3지구 과원으로 동지 6명과 함께 1920년 3월 28일 간도 이도구(二道溝) 중앙촌(中央村)에 거주하는 밀정 안대화(安大和)를 총살하였다. 이 활동 이후에도 북간도를 무대로 활동하던 그는 1921년 12월 4일 북간도 두도구(頭道溝) 일본영사관 분관 일경찰대에 붙잡혔다. 국내로 압송된 남규천은 1922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7호 위반·살인강도·불법체포·감금·주거침입·강도치사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9년 2월 4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 金重建외 10명 검거에 관한 건(1921. 12.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京城刑務所:1934. 12. 7)
- 假出獄執行濟之件報告(京城刑務所:1935. 5. 15)
- 東亞日報(1922. 7.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