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최동학은 김태원의진(金泰元義陣)에서 도포장(都砲將)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1월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전사(戰死) 순국(殉國)하였다.
김태원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07넌 9월 결성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선봉장(先鋒將)으로 활동하였다. 동년 10월 4일 신덕순(申德淳)과 정읍 내장사(內藏寺)에서 합세하여 신덕순은 도독(都督), 김태원은 선봉, 그의 아우 김율(金律)은 호군(護軍)이 되었다. 그러나 회문산전투에서 신덕순이 체포되는 등 의병진은 일시 무너졌다. 1907년 12월경까지 김태원은 영광·나주·함평·무안·장성 등지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김태원부대는 약 400~50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함평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는 등 전라도 일원에서 강력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태원부대를 목표로 한 소위 일본군 토벌대가 1908년 1월 26일과 동년 4월 19일에 투입되었다. 일본군 토벌대의 추격을 받게 된 김태원부대는 동년 2월 2일(음 1. 1) 창평 지곡(芝谷)을 거쳐 무동촌(舞童村) 등지를 전전하였다. 그리고 2월 2일(음 1. 1) 휘하의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이 전북 순창에서 피살 순국하였고, 동년 3월 29일 그의 아우 김율이 체포되었다.
최동학은 1908년 2월 일본군 토벌대의 추격을 받던 중, 영광 낭월산(朗月山)에서 전사(戰死)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竹峰靑峰事跡(국사편찬위원회 소장, 1940)
- 義重泰山(죽봉김태원의병장기념사업회, 1998) 159~20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639~642, 946~948면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연구(홍영기, 2004) 255, 56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