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재용은 1932년 9월 함흥경찰서 유치장에서 소위 '함흥 제1차 공청사건'의 주모자 중의 한 사람인 강목구(姜穆求)로부터 감옥에서 재건운동을 지속해 달라는 인계서를 받았다. 출옥 이후 함흥지역에서 이전부터 활동해 오던 최경덕(崔璟德), 차영락(車永樂) 등과 회합하고 '고려공산청년회재건 함흥조직준비위원회(高麗共産靑年會再建 咸興組織準備委員會)'를 결성하였다.
이후 김재용은 최경덕을 흥남에 파견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으며, 이들로 하여 흥남의 조선질소비료공장(朝鮮窒素肥料工場) 내에 '혁명적화학노동조합 조선질소공장반 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김재용, 최경덕, 차영락 등이 주도하여 함흥지역에서 결성한 '고려공산청년회재건 함흥조직준비위원회'는 도시부와 농촌부로 나누어서 도시부의 책임자로 김재용과 최경덕이 맡았고 그 밑에 가두분자로 김희경(金喜慶), 윤종청, 차영락 등을 소위 3인조라 하여 출판부야체이카 책임자에 김희경, 금속부 책임자에 최경덕으로 분담하고 기관지를 발행하여 동지 규합과 의식화에 주력해 왔다.
김재용은 1934년 5월 메이데이 격문살포가 단서가 되어 함흥경찰서에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예심(豫審) 중 폐결핵으로 보석되어 치료를 받다가 1935년 6월 7일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5. 4. 12, 6. 10, 6. 12)
- 朝鮮中央日報(1935. 4.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