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8월 무산청년회 (無産靑年會) 를 창립하고 1923년 8월 경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산하 청년뷰로 간부와 1924년 2월 경 신흥청년동맹 (新興靑年同盟) 창립당시 집행위원 (執行委員) 을 역임하다가 1925년 1월 경 서울 종로에서 체포되었으나 방면되었으며, 1925년 2월 경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全朝鮮民衆運動者大會) 준비위원 (準備委員) 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同年) 4월 18일 고려공산청년회 (高麗共産靑年會) 결성에 참여하였고, 동년 (同年)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全朝鮮民衆運動者大會) 대의원 검거시 체포된 후 1926년 3월 사망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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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무(全無)는 1922년 8월 무산청년회(無産靑年會)를 창립하고 1923년에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산하 청년뷰로 간부가 되었다. 1924년 2월에는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 결성에 참여하였고, 집행위원(執行委員)으로 선임되었다.
1924년 신흥청년동맹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전무는 「기근과 무산자」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이처럼 신사상을 통한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전무는 1925년 1월 서울에서 체포되었다가 방면되었다. 이후 1925년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준비위원(全朝鮮民衆運動者大會準備委員)으로 활동하였고, 동년(同年) 4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5년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의 금지에 반대하는 '적기(赤旗)시위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흥청년동맹 창립총회의 건(京鍾警高秘 제1451호의 2, 1924. 2. 12)
- 朝鮮日報(1925. 1. 12, 1. 21, 4. 22, 1926. 3. 29)
- 東亞日報(1925. 4. 30)
- 思想月報(1932. 11. 15) 제8호 29면
- 신흥청년동맹 월례회 개최의 건(京鍾警高秘 제8933호의 1, 1925. 8. 11)
- 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集(김경일, 永進) 제3권 72~81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김준엽 외, 청계연구소) 자료 2, 16~17, 43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김준엽 외, 청계연구소) 제2권, 134, 205, 210, 240, 320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 성대경, 1996) 42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