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치경은 1919년 12월 재만 독립군단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으로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하는 밀정을 총살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성립되었다. 국내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건너가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던 청장년들을 통합하여 성립한 단체였다. 삼원보의 본부와 함께 그 주변 서간도지역 및 국내의 각 도에 지단을 설치해 간도와 국내를 연계하였다.
성립 초기 대한독립단은 군자금 모금과 친일 밀정 처단에 주력하였는데, 김치경도 그 같은 방침에 따라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시기 독립군을 염탐한 밀정 중에는 일제에 협력한 자와 중국 관병에 협력한 자 등 두 종류가 있었다. 물론 한인 밀정을 이용한 중국 관병은 친일의 경향을 가진 측이었다.
압록강변의 집안현(輯安縣)에 거주하던 최경태(崔京泰)가 대한독립단의 기밀을 빼내 중국측에 팔아먹는다는 첩보를 입수한 대한독립단 간부들은 김치경외 2명의 대원을 이곳에 파견하였다. 파견대는 1919년 12월 7일 최경태를 붙잡아 삼림으로 끌고 가 그의 매국적 행위의 죄과를 열거한 뒤 총살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곧 일제의 국경수비대에 발각되어 달려온 일본군과 접전 끝에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김치경은 1920년 10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살인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0. 10.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