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본적은 평안북도(平安北道) 강계군(江界郡) 성간면(城干面) 서동(西洞)이며,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 이마구(二馬溝)였다.
이태화는 1919년 12월 7일 길림성 집안현에서 조맹선(趙孟善)을 단장으로 하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 최영순(崔永淳) 및 이홍성(李洪成), 김길수(金吉洙), 최윤찬(崔允贊), 김선호(金善浩), 김치경(金致京), 김시풍(金時豊), 이용규(李龍奎) 등과 함께 일제의 밀정 최경태(崔京泰)를 이마구에서 삼도구(三道溝)로 통하는 산에서 처단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 이후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만주지역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주로 의병 계열에 의해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였으며, 주로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이태화는 1920년 10월 26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징역(懲役) 3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0. 10. 26)

